염색이란

  1. 「안경조 님의 염색의 과학, 경춘사」에서 발췌했음을 알립니다.
    염색의 과학에는 염색의 정의와 역사 및 염색용 약제, 날염용 약
    제, 염료, 염료의 특성, 염색기기, 색등 염색의 기초이론과 실제
    를 기초부터 쉽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2. 염색의 정의
  3. 염료나 안료 등의 유색물질을 사용하여 섬유물질에 착색하는 조
    작을 염색이라고 한다. 또 근대염색이론화학의 시조로 생각되는
    빅카스텝박사에 의하면 염색에 관해서 "염색이란 염욕중의 염료
    농도의 감소와 함께 염료가 피염물에 흡착되고 또 동시에 염색물
    은 수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정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위의 2가지 기술은 모두 염색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단지 후자
    는 전자에 비해서 좀더 과학적인 설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염색
    은 크게 침염(Dteing)과 날염(textile prints)으로 나누며 침염
    은 염액에 침지하여 행하는 조작이고 날염은 印捺조작을 주체로
    하는 무늬염을 말한다.
    염색은 자연의 색, 형을 의복위에 표시하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
    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자연적인 재료에 의한 침염
    의 방법으로 예를 들면 홍화에 의한 홍염, 꼭두서니의 뿌리로 염
    색한 적색염, 藍에 의한 청색염 등으로 무늬염의 예로는 홀치기
    염, 우선염 등이 있다.
    염색기술은 자연염료에 의한 체험적인 염색기술과 합성염료에 의
    한 과학적인 염색기술로 나우어져 있고 현재 염색기술의 주류는
    후자이다. 염색기술은 새로운 섬유, 염료, 약제, 기계설비 등의
    개발에 의해서 진보해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염색물에 요구되는 성능으로서는
    ①색상은 선명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더욱이 색상간에는 조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
    ②색상은 내구력이 있어서 일광, 세탁, 땀, 기타에 의해서 쉽게
    변색하거나 탈락하지 말아야 한다.
    ③ 염색하는 조작은 용이해야 하고 또 가능한 한 비용은 저렴해
    야 한다.

  4. 염색의 역사
  5. 인류가 의류를 염색한 역사는 고대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 착의는 쪽으로 염색하여 아름다음을 나타내었
    다. 인류가 자기의 몸을 보호하고자 자연에 존재하는 동물의 모
    피나 식물류의 잎이나 줄기 등으로 의복의 형태로 감았을 것이
    며 그것에서 좀 더 발전하여 초기의 직물과 유사한 포지로 제작
    하여 몸을 가리고 추위에서 자신을 보호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화초들과 또 동물들의 화려한 천연색
    상으로부터 색의 미를 점차로 알게 되었을 것이고 이후로 천연적
    인 동.식물이나 광물 등에 존재하는 색의 원료를 이용하여 염색
    하는 기술을 창조해 왔으리라고 상상이 되며 그와 같은 유물들
    이 오늘날까지 남아서 그 때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이 여러 곳에
    서 발견되었다.
    퍼킨의 염료합성(1856년, 영국)을 계기로 염색방법도 종래의 경
    험적인 소량생산의 기법이 합성염료에 의한 대량생산의 과학적
    인 염색방법으로 비약하였다.
  6. <한국염색공업> 발전상황
    조선왕조 말까지는 주로 명주, 명주, 모시, 삼베등을 착용하였으
    며, 이들의 염색은 식물성섬유로서 수공업으로 하여 왔었다. 면
    직물 및 면사는 영국 및 일본에서 수입하여 직조를 시도하였으
    나 수공업을 면치 못하였다.
  7. <일제시대>
    수공업을 벗어나 현대화된 기계에 의한 섬유기술은 1917년 11월
    에 일본 三井계열 자본으로 조선방직주식회사가 면방적기 15,000
    추, 직기 500대를 부산에 설립한 것이 최초이다. 3.1운동 당시
    인 1919년에 우리 민족자본으로 면직기 114대를 경성방직주식회
    사가 영등포에 설립하였다. 그후 1936년에 경성방직주식회사가
    면방적기 21,600추의 방적시설을 증설함으로 명실공히 방적 및
    제직의 시설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두 개 회사의 설립으로 우
    리 나라에 근대적 면방직공장이 출현하게 되었다. 면포의 수급
    이 꾸준히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에는 더 이상의 공장
    이 설립되지 않았다. 그 후 1930년대에는 일본의 만주에의 식민
    지 확대로 군수의류품 충당의 필요성이 생겼으며 또 일본 본사에
    는 중요산업통제법이 시행됨에 따라 일본의 면방직자본이 대한진
    출로 활발하게 움직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천 및 서울에 동양
    방직(주), 서울 및 광주에 종연방직(주), 목포에 조선면화(주)
    가 각각 설립하게 되어 7개의 공장이 설립되었다. 그 중 한 개만
    이 유일한 우리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반에 접어들면서 노동력의 부족과 미군의 일
    본 본토 폭격의 격화등으로 일본 본토의 여러 방직공장들이 한국
    으로 피난차 이설하기 시작하였다. 염색가공공장은 상기의 방직
    회사가 보유한 것 외 주로 일본인이 경영하는 柳町染공장등의 중
    소기업이 있을 뿐 특히 염색기술자도 대부분 일본인이 간부사원
    이었으며 한국사람에게는 간부사원자격을 주지 않아 8.15해방당
    시 우리 나라의 고급염색기술자가 전무한 상태이었다.
    이와 같이 수공업에서 기계화공업으로 변동되는 동안 일본계열
    의 변방공장에서는 염색부를 겸비하여 면직물의 염색물을 생산하
    였다. 이 당시 사용한 염료는 직접염료, 황화염료, 밧드염료, 아
    조익염료 등이며, 8.15해방 직전에는 주로 군수품을 생산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민수품의 공급부족현상을 나타냈다. 이때 우리 민
    족자본으로 설립된 경성방직주식회사도 시흥에 염색공장을 설립
    하였다.
    1941년에 경성방직(주)에서는 우리의 자본과 기술로 만주에 방적
    기 35,000추, 직기 1,000대의 南滿紡을 설립하여 1945년 8.15해
    방 당시까지 가동하였다는 것은 특기대필할 만한 일이다.
    조선왕소 말 이후부터 8.15해방 까지의 섬유관계의 교육기관과
    공공시험기관을 보면
    1) 공공시험기관
    ① 1883년(고종 20년) 典 局산하에 제지, 광물, 양조분야에 대
    한 시험, 분석의 시험소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설치되었으나
    이 당시에는 섬유분야는 없었다.
    ② 1909년 이 시험소부설의 공업전습소에 염직과가 처음으로 생
    겼다.
    ③ 1912년 한일합병으로 일본의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이 시험소
    가 개편 되어 중앙시험소로 되는 동시에 각종 직물의 제직염색
    에 관한 연구 및 기술지도를 담당하는 염직과 가 신설되어 8.15
    해방당시까지 이르렀다.
    2) 교육기관
    ① 1916년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공대)에 방직학과 설립
    ② 1917년 시험소의 부설 공업전습소가 경성고등공업학교 부설
    전습소로 변동되면서 염직과가 직물과로 됨
    ③1922년 경성고등공업학교의 부설 전습소가 경성공립공업학교
    (현 서울기계공고)로 이양되면서 직물과가 機纖科로 됨
  8. < 해방이후에서 1960년대 >
    1945년 9월부터 우리 나라의 민족자본으로 된 경성방직(주)와 종
    연방적(주)영등포공장만이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1948년 정부수립 후에는 면장직공업의 중요성이 인식되어 정부지
    원하에 기타의 공장도 우리 나라 사람의 손으로 일부 정상가동하
    게 되었다. 이 당시 니트, 방모, 견직 등의 중소기업도 가동하
    기 시작하였다. 1950년 6.25동란이 발생되자 대구, 부산지구의
    몇몇 공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戰災를 입어 정확한 통계는 불명하
    나 전 섬유생산시설의 2/3이 손실되었다.
    8.15해방 이전에는 염료 및 조제를 서독, 일본등지에서 수입하
    여 사용하였으며 특히 염색조제는 일본제를 주로 많이 사용하였
    으므로 염색방법이 일본제의 염료, 염색조제로 처방되어 있어
    8.15해방후 일본인 염색기술자가 전부철수함으로서 염색부분의
    고급기술자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8.15해방을 당한 동시에 정부
    의 대일구매규제정책에 따라 일본제의 염료 및 염색조제의 수입
    을 금지시킴으로서 염색공장운영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였다. 그
    러나 이 때 구라파 측의 각 염료, 염색조제 메이커가 대거 한국
    대리점을 설치하고 외국인으로 구성된 판매원과 판매기술자를 투
    입하여 염료, 염색조제의 판매는 물론 염색기술지도를 겸하여 줌
    으로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리 나라의 염색공장은 일본인들이 경영하든 것을 인수받았거
    나 신설된 염색공장으로서 기술자 불항으로 많은 고충을 겪었으
    나 오랫동안의 숙련에 의한 기술자 및 각 공과대학의 졸업자로
    충당을 하여가면서 일본, 구라파 등지에 많은 기술자를 파견 훈
    련시킴으로서 기술도입을 하였다.
  9. <성장기>
    1960년대에는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하여 정부
    는 수출금융, 세제지원, 수출원부자재도입으 면세 등 과감한 시
    책이 추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과의 차관이나 합작투자에 의
    한 수출조건부 생산시설이 도입됨으로서 섬유생산시설 및 염색가
    공시설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놀랄 만큼 증설됨으로서 섬
    유관계산업에는 일대 성장기에 들어갔으며 그때 시설기반을 확실
    하게 다져준 결과로 오늘날의 섬유공업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
    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시의 염색에 있
    어서 면은 밧드염료, 아조익염료, 반응성염료로 양모는 크롬염료
    로 각각 염색하는 등 염색기법이 고도화하게 되었다. 염색뿐만
    아니라 면직물의 방축가공기기인 SANFORIZING기가 동인염색가공
    (주)에 의하여 처음으로 도입되어 군복지의 방축가공에 큰 역할
    을 하였다. 방수가공도 군수품을 조달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
    반적인 방수제를 사용 처리하였기 때문에 군수규격에 맞지 않았
    다. 그래서 이 당시 군수규격에 맞는 방수가공기술이 도입되어
    사용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로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이 많
    았으나 관민 일체의 힘으로 슬기롭게 잘 대처해나가 섬유공업의
    위치를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다음의 위치를 확고히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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