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와의 만남은 설레임 이었습니다.
사전에 그에게 가진 선입견은 그 와의 첫 만남에서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오늘날의 그가 있기까지에는 그의 행동과 말투와 눈빛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첫만남에서 그는 우리를 델라구아다의 공연에 초청해 주셔서 공연전 소주집에서 진행된 강의와 공연이후의 강의실에서 진행된 열띤 토론들...
매번 그는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 어떤 핑계를 댄적도 없었고, 바빠서 준비가 소홀 했노라는 이야기도 없었으며, 많은 학우들이 나오지 않아 텅 빈 좌석들을 보면서도 그는 흔들리거나,실망하는 눈빛을 보이지도 않았으며, 이땅 공연계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욕하고 있다고 말할때는 마치 이유와 해답을 알고있다는 듯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다른사람 이야기 하듯 했읍니다.
단, 그가 흥분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이땅의 문화정책과, 불합리한 문예진흥기금. 열악하고 충분하지 못한 공연장, 문화에 대한 각종 세제 문제 등으로 국가와의 소송문제, 문화장관의 문화 스럽지 못한 옷차림에 관해서 언급등등을 말씀 하실 때 였읍니다.
그가 뮤지컬 전도사임을 자임하며 불철주야 노력하며 ,특히 외국의 공연을 수입해와서 척박한 우리창작 공연을 멍들게 한다는 지적에 관해서는 "오페라의 유령"이나 " 캣츠" 등의 계약 과정의 숱한 일화들을 들려 주시거나, 일본이나 외국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시며 본인의 노력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2개월 여를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그의 가슴속에 잇는 문화에의 열정을 저희 몇몇만 듣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페라의 유령" 국내 제작자로서 보다는 뮤지컬의 본무대 보르도웨이에 "라보엠" 공동제작자로서 우뚝선 그는 오늘도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문전 박대에도 아랑곳 않고 투자제안서를 가슴 가득 않고 미국으로, 영국으로 투자회사의 회전문을 밀치며 뛰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