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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방군에서 있은 이야기 입니다.
한해의 군민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행사가 있었나 봅니다.
그 행사는 처음 제례를 올리는데 초헌관 (강신 후 처음 잔을 올리는 이. 대부분 집안의 제례에서는 장자가 초헌관, 그다음 아헌 , 종헌으로 한다)이 술잔은 받아서 올리고 절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묵념으로 대신하고,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이므로 하느님 이외의 신께는 머리를 절을 할 수 없다고 하여 그날 행사장에서 난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곡 이이 선생의 경연일기(徑筵日記)에 의하면 명종대왕20년(1565) 7월13일은 큰비가 내려서 문정왕후(11대 중종의 계비)의 喪에 발인할 때 비가와서 땅이 질퍽거리니 예조판서 尹春年이 이르기를 “백관들이 말을 타고 상여를 따라가자” 라고 말하자, 찬반 양론이 분분해 지자 이에 임금이 나서서 “일찌기 도성에서 상을 당하여 말을 타고 따라가는 것은 옛날의 예의가 아니다.” 라고 함으로써 는 논의는 일단락 되었다고 한다.
13일 출상하여 운구행열이 지금의 시내에서 태강릉, (지금 흔히 줄여서 태릉이라고 한다.
문정왕후 이후 훗날 명종(13대)과 인순왕후가 묻혀 강릉이 되었으니 후일 사람들은, 강태릉이라 불리 워야 할 것을 죽어서도 섭정한다고 호사가들은 말한다) 까지 가는데 3일 이 걸려
15일 하관을 하는데 더위와 습도에 지친 왕이 끝까지 상여를 따르지 못해 초헌관을 할수없게 되자 이때 좌의정 심통원과 우의정 李蓂(이명)은 장지에 가까이 있었음에도 예문을 살펴보지도 않고 참찬(參贊) 송기수를 차출 헌관으로 정하였다. 식자들은 그러한 변례(變禮)를 비난하였다.
지금 세상은 변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혼란스러움을 경험하는 가운데 에서도 우리는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군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것은 절하는 그 모습도 중요하지만 그날의 행사와 축제 자체가 중요한 것일 진데 군수는 자신의 종교와 신념운운하며 현재의 군민을 무시하는 우를 범했다 할 것 이며, 윤춘년의 말 또한 요사이의 예로 보면 당연히 그리해도 될 것이지만 그 당시 자신의 편의만 고려하여 비난을 자초한 것이며, 심통원 과 이명 또한 그 당시 권력관계를 잘 보면 주된 관심사가 무엇 이었는지 후손들인 알 수가 있다 하겠습니다.
현재 기독교인이 우리의 제례형식을 보면서 무조건 비난만 하는 현실은 정말 기독교 지도자들의 바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온돌문화가 없는, 공간의 개념이 넓은 ,침대문화의 그들이 절을 하는 그 자체를 우상숭배 격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며, 추도식에서 묵념이나 기도하는 것은, 말장화를 벗기 어려운 상태에서, 말을 타고 언제라도 공격해오는 적과 언제라도 죽고 죽임을 당하는 싸움을 해야 하는 그들의 문화인 것이다.
추석이 다가 옵니다. 형제, 일가족들이 모여서 조상들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메시지를 다시 생각하고 이해하며 바른 생각을 가질 때 입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조상을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낮추는게 우상숭배로 죄악시 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우린 오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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